Ania Hobson / Courtesy of Ania Hobson
Ania Hobson / Courtesy of Ania Hobson

웃지 않고, 당당하고, 확신에 찬, 에너지가 느껴지는 여자들. 아니아 홉슨의 그림을 보고 이런 여자들을 담은 초상화를 별로 접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립스 옥션이 런던의 더 아티스트 룸(The Artist Room) 갤러리와 함께 서울에서 선보인 기획전 <뉴 로맨틱스(New Romantics)>에서 발견한 아니아 홉슨. 다양한 국가에서 활동하는 차세대 스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 이 전시에 이름을 올린 그는 젊은 여성의 초상화 작업으로 알려진 작가다. 2018년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수여한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WWD KOREA(이하 WWD) 서울에서 열린 <뉴 로맨틱스>전에 작품 <Tunnel>을 선보였다. 그림 속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ANIA HOBSON(이하 ANIA) 나는 모든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열린 결말로 두고 관객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해 자유롭게 해석하기를 바란다. 작품에 등장하는 자동차는 여정을 떠나게 해주는 매개체와 같다. 그 여정 자체가 바로 커플에게 펼쳐질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의 이야기인 셈이다. 둘 사이에 어떤 긴장이 흐르는 상황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장시간 피곤하게 운전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차를 타고 터널을 지나는 모습이 작품에 어둡고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공기를 더하고 거의 명상에 가까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WWD 회화, 특히 인물화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인물화의 어떤 부분이 당신을 매료시키나?

ANIA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인물을 그리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상상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에 존재감을 부여하는 것은 상당히 초현실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인물이 일순간 커다란, 종종 인체 실물 사이즈의 캔버스 위로 모습을 갖추어 나타난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대로 그려지게 될지, 예상 밖의 새로운 존재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게 내가 인물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Ania Hobson, "Good Choices", 2021, Oil on canvas, 51×41cm.  / Courtesy of Ania Hobson
Ania Hobson, "Good Choices", 2021, Oil on canvas, 51×41cm.  / Courtesy of Ania Hobson

WWD 주로 여성을 그림에 담는다. 당신 작품을 보고 이런식으로 여성을 묘사한 초상화를 별로 대한 적이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ANIA 나는 갈 곳 잃은 듯한 혼란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침대나 긴 의자 같은 곳에 나체로 누워 있는 ‘비탄에 빠진 소녀’같은 여자를 보는 데 신물이 났다. 그 대신 내게 익숙한 여자를 그리고 싶었다. 똑 부러지고 강하고 확신에 찬 여자 말이다. 앞서 말한 편견 가득한 여성의 이미지는 우리가 매일 같이 미디어나 SNS, 광고를 통해 접하고 씨름해야 하는 모습이다. 내 방식대로 여성을 그리는 것은 이 모든 것에 대한 나의 대답이자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 것으로 되찾는 길이다.
작업을 통해 여성을 있는 그대로, 혹은 내가 보는 그대로 묘사하는 일을 계속해나가고자 한다. 남들 보기에 좋으라는 식이 아닌, 강하고 당당한 본연의 모습 그 자체로 말이다.

Ania Hobson, "Heated Debate", 2022, Oil on canvas, 170×230 cm.  / Courtesy of Ania Hobson
Ania Hobson, "Heated Debate", 2022, Oil on canvas, 170×230 cm.  / Courtesy of Ania Hobson

WWD 그림 속 여성은 당신이나 주변인을 모델로 삼나? 인물을 그릴 때 어떤 점을 표현하는 데 가장 신경 쓰나?
 

ANIA 내가 그리는 여성의 대부분은 ‘나’이거나 내가 겪었던 감정적 또는 개인적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내 주변 사람일 때도 있다. 나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를 통해 영감을 얻기도 한다. 바나 식당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 순간의 분위기나 조명 아니면 공기 중에 녹아든 감정 같은 것이 내 안의 무언가를 탁 건드리면 그 찰나를 그림으로 담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난다. 움직임은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움직임과 표현적 특징을 강조하는 것.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얼굴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소통으로 수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모두가 이해하는 침묵의 언어인 셈이다. 이런 신체적 표현을 통해 정확한 감정과 이야기를 포착해내는 일이 내게는 정말 중요하다.

WWD 과거의 당신 작품이 좀 더 정적이고 카페의 한 장면 같았다면 최근작은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더 강렬하고 긴장감이 흐른다. 배경은 붉은색이고 여자들은 논쟁을 하거나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일어났나?

ANIA 지금까지 각 시기마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려오면서 내 작업은 계속 변화하고 진화했다. 최근의 내 작업이 더 열려 있고 표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는 내가 겪은 경험을 통해 얻은 개인적인 자신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아주 개인적인 일이지만 결국에는 그 그림을 사람들이 보고 그에 대해 의견을 가지고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감정을 느끼게끔 세상에 내놓는 일이다. 그림은 나를 위한 일이자 시각적인 기록과도 같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가끔은 어떤 장벽을 넘어서야 할 때가 있다. 빨간색은 감정을 상징한다. 내게 빨간색은 너무나 많은 것을 함축하는 강렬한 색이다. 내가 그린 여성 중에는 완전히 빨간색으로 칠한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은 나의 자화상이다.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내 감정을 다루는 하나의 방식이 됐다. 힘과 자신감을 상징하면서도 내 어깨에 앉은 내 안의 악마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격정적인 측면을 나타내기도 한다.

Ania Hobson, "Outside Bar", 2021, Oil on canvas, 190×180 cm.  / Courtesy of Ania Hobson
Ania Hobson, "Outside Bar", 2021, Oil on canvas, 190×180 cm.  / Courtesy of Ania Hobson

WWD 올해 미국 스티브 터너(Steve Turner) 갤러리에서 개인전 <플레잉 위드 파이어(Playing with Fire)>를 선보였다. ‘불’이라는 테마를 통해 무엇을 시도해보고 싶었나?

ANIA 갤러리와 함께 전시 제목을< 플레잉 위드 파이어>라고 정한 것은 여러 방식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불은 위협, 생존, 감정을 상징하는 심벌이다. 불은 내가 가진 많은 감정을 색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는 계기를 열어줬다. 상상으로부터 그림을 그려내고 나의 뇌를 총동원해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도전과도 같았다.
WWD 미술 외에 무엇을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나? 당신의 작품이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ANIA 항상 생각해왔는데 만약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야생동물이나 동물 행동 연구자가 되었을 것 같다. 내가 여행한 모든 곳에서 그곳의 자연에 흠뻑 빠져들곤 한다. 자연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흘러가는 또 다른 세계이고 그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 여행만으로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주위에 있는 야생동물의 존재를 인식하면 여행에 또 다른 차원이 열린다. 자연은 인간에게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고 우리가 아무리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측면이 훨씬 더 많다.

WWD 앞으로 당신의 작업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나? 현재 열중하고 있는 일이나 준비 중인 프로젝트는?

ANIA 내 작업은 항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게 나아갔으면 하기 때문에 내 작업은 알게 모르게 항상 무의식적으로 변화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모든 작업은 내가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현시대를 살아가며 그에 수반되는 불안에 대처해가는 모습을 기록한 연대기와 같다.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이런 것에 적응하고 내 작업도 그로부터 영향을 받겠지만 항상 중심을 잃지 않고 스스로에게 솔직하고자 한다. 내 그림은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점차 더 많은 인물을 담아가고 있다. 그 안에서 내가 그려내는 사람들 사이의 역학 관계와 심리 작용에 중점을 기울여 작업하고 있다. 현재는 다음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하나는 올해 말 파리 루트코우스키(Ruttkowski) 갤러리와 함께하는 전시회이고 다른 하나는 내년 초 뉴욕에서 열리게 될 전시회다. 2023년 가을쯤에는 독일에서 세타레(Setareh) 갤러리와 함께 두 번째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Ania Hobson, "Tunnel", 2022, Oil on canvas, 164.9×120.3 cm.
Ania Hobson, "Tunnel", 2022, Oil on canvas, 164.9×120.3 cm.  / Courtesy of Ania Hob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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