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작가 최랄라는 선명한 색감의 배경과 외로워 보이는 여자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일관되고 독특한 스타일로 주목받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의 사진 속에 담긴 비밀스러운 이야기와 정서에 동요한다. 최랄라는 얼마전 이에르 국제 패션 및 사진 페스티벌 (International Festival of Fashion and Photography at Hyeres, 이하 이에르 페스티벌)에서 사진 부문 대상인 그랑프리와 대중 투표상을 수상했으며 본격적인 순수 예술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사진작가 최랄라. / Photograph by Rala Choi
사진작가 최랄라. / Photograph by Rala Choi

WWD KOREA(이하 WWD) 수상을 축하한다. 처음 참가한 세계적인 페스티벌이다 보니 규모에 놀랐을 것 같다.

RALA CHOI(이하 RALA) 가장 놀라웠던 건 현장에 참석한 동양인이 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수상자 중 한 명인 베트남 출신 사진가 카이론 두엉(Chiron Duong)은 개인 사정으로 페스티벌 기간에 참석하지 못했다).

WWD 이에르 페스티벌에는 어떻게 참가하게 되었나?

RALA 해외로 진출하는 계기를 찾던 중 함께 일하는 파트너가 참가를 권유했다. 온라인상으로 작품 스무 점을 보내서 지원했고 1차를 통과해서 열 점을 실물 프린트로 보냈다. 그중에서 추려진 열 명 안에 포함되어 페스티벌 기간에 현장에서 전시를 열었다. 행사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이 그 전시를 본 다음 투표를 하고, 후보자들은 심사위원 앞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는 과정으로 심사가 진행됐다. 그러고 나서 최종적으로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수상자가 선정된 거다. 단순히 이미지만 제출하고 평가받는 게 아니라 작업에 대해 계속해서 심층적인 질문을 받았다.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 어떤 사진인지 집요하게 물어보는 방식이 색다르고 재미있었다.

WWD 다른 후보와 자신의 가장 큰 차별점은 무엇이었나?

RALA 기본적으로 내 작업 자체가 다른 후보자들과 달랐다. 대부분 일상에서 벌어지는 순간의 포착 같은 느낌이라면 나의 사진은 생각을 집요하게 표현하는 예술 작품의 느낌이 강했다. 그런 점이 심사위원들의 눈에 띄지 않았나 생각한다.

WWD 제출한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궁금하다.

RALA 사실 심사 중에 들었던 코멘트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작업 의뢰를 받을 의사가 있냐는 질문만 기억에 남는다.

WWD 상업적인 작업도 할 건지에 대한 질문인데 뭐라고 답했나?

RALA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만 시켜주면 뭐든 잘할 수 있다고 답했다.

WWD 하지만 상업적인 작업보다는 작품 활동에 더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어떻게 경제적인 면을 보완했나?

RALA 위기가 왔을 때쯤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곤 했다. 가라앉을 때쯤 누군가 건져주는 것처럼. 그리고 2년 전에 알게 된 지금의 파트너가 기획과 아티스트 브랜딩, 홍보까지 도맡아 하면서 사정이 굉장히 좋아졌다. 개인전을 열어서 수익도 냈다.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WWD 자신의 작업을 순수 예술로 분류하나?

RALA 전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그동안 그것 때문에 끊임없이 힘들었다. 상업 사진가인지 예술 사진가인지 확신 없이 경계에서 배회하는 느낌이 강했으니까. 정체성이 모호하다 보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나 자신조차 내 마음이 어떤지 몰라서 더 힘들었다. 이번에 수상하면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예술 사진이고 그 작업으로 나를 존중해주는 기업이나 패션 브랜드가 있다면 그들과 함께 작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Her', 2018, Courtesy of Rala Choi
'Her', 2018, Courtesy of Rala Choi
'Her', 2019, Courtesy of Rala Choi 
'Her', 2019, Courtesy of Rala Choi 
'Her', 2019, Courtesy of Rala Choi
'Her', 2019, Courtesy of Rala Choi

WWD 작품에 여자의 뒷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RALA 시작한 계기는 내가 가진 일종의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뒷모습은 다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는 그 사람의 생김새나 표정은 알 수 없다. 이 작업에 대한 최초의 설명인 ‘너무 말하고 싶은데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 인 거다. 내 자신의 문제를 너무나도 털어놓고 싶지만 결코 말할 수 없는 나 자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 고, 그런 내 모습을 엄청나게 오랫동안 쌓고 쌓고 쌓아오다가 그 응어리를 사진으로 표현한 거다. 사진으로 표현하기 위해, 앞서 말한 ‘너무 말하고 싶은데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모델로 찾기 시작했다. 내가 느낀 콤플렉스들을 응축해서 문장으로 내뱉은 건데, 혹시나 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 까라는 생각이었다. 신기하게도 다양한 형태와 각기 다른 이야기의 일을 겪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 경험의 결과는, 다 비슷한 것 같았다.

막상 낯선 스튜디오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 내가 먼저 나의 이야기를 털어놔야 했다. 살면서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 어떤 콤플렉스가 있으며 그동안 무슨 일을 겪어왔는지를 말이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도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하고, 용기 내서 내 앞에 왔지만 선뜻 말하지 못했던 것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들의 이야기 중에는 도저히 말하기 힘든 내용도 많았기에 듣고 있는 나 또한 감정의 동요가 심했다. 그리 고 그 감정을 어떻게든 시각화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내 사진의 근간을 이루는 색감은 그동안 숱하게 시도하면서 이미 스타일이 완성된 상태였다. 은유적으로 말하면 육체는 있는데 정신이 빠져 있었달까. 나와 공감하는 사람들이 와서 내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해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진짜 필요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뒷모습과 색감이 육체라고 한다면 그 육체를 걸어 다니게 하는 정신, 사진의 콘셉트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점점 완성된 것 같다.

그렇게 완성된 뒷모습의 그녀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는 희미해진 누군가다. 내게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사람, 앞으로 어떤 표정으로 살아갈지 궁금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사람. 지금으로 서는 애틋함과 아련함의 대상이다.

WWD 자기 자신을 투영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RALA 처음에는 나도 내 자신을 투영하는 줄 몰랐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힘들었겠다’, ‘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도 살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업물이 쌓이고, 내 생각이 변하고 머리 속이 정리되는 순간이 왔을 때 내가 타인을 찍기는 했지만 결국 내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다라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WWD 사진 작업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RALA 이 일을 하기 전에는 꿈이 없었다. 태어나 버렸으니 살아야 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공장에 취직했는데 2년 동안 하루에 적게는 일곱 시간, 거의 열 시간씩 서서 일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기계 부품이 되어서 기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게 너무 싫었다. 해양경찰로 입대한 후에는 사진을 찍어본 적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해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찍어서 증거로 남기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때 평소에 볼 수 없는 일이나 인간의 죽음, 물에 떠 있는 시체를 많이 보게 되었다.

제대 후에는 나 자신으로,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보니 창의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즉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사람들을 모았더니 모인 사람들이 다 모델, 헤어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였고 사진 찍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 게 내가 카메라를 잡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쭉 이어졌다.

WWD 사진의 어떤 점이 좋은가?

RALA 사진을 계속 찍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스스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다는 점. 사진을 찍는 게 가장 행복하고 값지게 느껴지는 이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생각에는 변함없다.

WWD 창의적인 표현 방식으로 사진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RALA 사진가들에게 이 질문을 하면 별의별 대답이 나올 것이다. 나의 필름 작업은 생각한 것을 드로잉해서 그 이미지를 사진으로 재현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하면 좋은 점은 내 생각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게 되면 촬영한 것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 보니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거나, 혹은 좋지 않게 나온 결과물을 보고 계속해서 바꾸게 된다. 그건 결국 내 생각을 바꾼다는 뜻이고 그렇게 바뀐 생각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면 난 결국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진은 나의 생각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그렇게 지켜온 것들이 응축되고 쌓이고 모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졌을 때 누군가 내가 느낀 감정에 공감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즐거울 거다. 사진 작업은 내게 그런 행복감을 준다.

WWD 살면서 한 흔치 않은 경험들이 지금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RALA 우선 주제 선정을 할 때 피해야 할 것과 받아들일 것을 명확하게 나눠주기도 하고, 기술적으로는 50 밀리미터 렌즈를 쓸 것인지 110밀리미터 마이크로 렌즈를 쓸 것인지를 결정하게 해준다.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재촬영해야 할 프로젝트인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할 프로젝트인지, 다시 찍어야 할지 버려야 할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게 해준다.

WWD 감성적인 내용보다는 실질적인 과정에 도움을 준다.

RALA 실제로 그렇다.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이에르 페스티벌이 끝나고 여행을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사귀고 촬영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 가서 라이프치히 발레단의 수석 솔리스트와 그의 연인의 커플 누드 사진을 찍었고, 베를린에서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큐레이터를 만나 포트레이트를 찍었다. 프랑스에서는 아시아와 프랑스 혼혈로 살아가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모습을 렌즈에 담기도 했다.

WWD 촬영할 때 색감 선정이나 연출 방식이 궁금하다.

RALA 사용하는 색의 가짓수는 많지 않다. 색의 종류를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자연광을 사용해 한 가지 포즈를 오래 견딜 수 있는 사람을 장노출로 찍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명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그 모습을 ‘찰칵’이 아니라 ‘차아아알칵’ 찍으면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미묘한 떨 림이 사진에 고스란히 표현되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아웃라인이 굉장히 흔들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인간상과 매우 닮아 있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끊임없이 변하는 게 인간이라고 생각하니까.

'Lovers', 2021, Courtesy of Rala Choi. 
'Lovers', 2021, Courtesy of Rala Choi. 
'Lovers', 2022, Courtesy of Rala Choi. 
'Lovers', 2022, Courtesy of Rala Choi. 

WWD 최근에는 검 프린트 작업에 빠져 있다.

RALA 필름 작업을 하다가 관심이 생겨 시작했는데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검 프린트는 네 가지 색을 종이 위에 층층이 쌓아 올려 수작업으로 사진을 완성하는 기법이다. 이미 나와 있는 결과물을 프린트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일일이 손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만드는 과정 자체가 매우 예민해서 변수가 우주만큼 다양하다.

처음에는 명확한 결과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라서 쉽게만 생각했는데, 하면 할수록 과정이 너무 힘들고 실패가 거듭됐다. 완벽한 답이 나와 있어서 그대로 모방하면 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게다가 새로운 오답만 무수하게 나오다 보니 심지어 그 오답을 해답으로 간주할 지경에 이른다. 최초의 결과물과 완전히 다른데도 좋아 보이는 거다. 그러면 어떤 게 맞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것도 괜찮은데?’ 싶다가 ‘아니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라는 마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걸 반복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소비하는 시간과 돈도 상당하다. 사 진가들은 이 작업을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그 과정은 자기 성찰이나 마찬가지다.

WWD 원하는 이미지를 그대로 담아내는 기존 작업과는 또 다른 접근이다.

RALA 그렇다 보니 완성한 검 프린트는 단 두 점밖에 없다. 그나마 원본에 가 장 근접하게 완성된 게 두 점이고 나머지는 그냥 그게 원본이 되었다. 검 프린트는 앞으로 예술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WWD 사진 작업 초기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차이점이 있다면?

RALA 처음에는 정말 많이 찍었는데 요즘은 촬영 횟수가 줄었다. 마치 끈적 한 쥐덫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이 유연해지는 게 아니라, 생각이 확고해지고 고착화되다 보니 행동도 굼떠지는 것 같다.

WWD 원하는 게 분명해지는 걸까?

RALA 그렇기도 하지만 표현하는 데 의심이 많아졌다. 내가 하는 생각과 내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는 거다. ‘이게 맞으니 이걸 하면 돼’라고 했다가 좀 더 생각해보면 ‘이게 아닌데’ 싶어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좋지 않은 방식 같아서 요즘에는 생각하지 않고 찍는 걸 즐기고 있다.

WWD 본인의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RALA 좋아하는 사진은 두 점이 있다. 파란 바탕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의 뒷모습과 어두컴컴한 방 한가운데에 서 있는 여자의 뒷모습. 내게도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게 이유다.

WWD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도 있나?

RALA ‘이걸 왜 이렇게 좋아할까’ 의아할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건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주위에 예술을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최근에 전시를 하면서 깨달은 점은 사람들이 대체로 공감하는 어떤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스토리다. 담겨 있는 이야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 사진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WWD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하다.

RALA 예전에는 주로 인간관계에서 영감을 받았다면 최근에는 눈앞에 보이는 형태가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피사체의 몸이 구부러지고 뒤틀리는 모습, 나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흥미롭다. 생각할 필요 없이 직관적이기 때문에 더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Edits: Song Borah 

Photographs: Rala Choi

Courtesy of RALA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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