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S/S PARIS FASHION WEEK RTW HIGHLIGHTS #2
- 디올·발망·꾸레주가 제시한 2026 봄 시즌의 새로운 언어
| 디올 Dior
디올 2026 봄 여성복 컬렉션은 조나단 앤더슨의 과감한 선언이었다.
“감히 들어올 텐가, 디올의 하우스로?”라는 문구와 함께 시작된 쇼는 기존의 메시지를 과감히 부수고, 브랜드를 새롭게 재정의하려는 그의 비전을 드러냈다.
튈르리 정원 텐트는 전율로 가득했다. 안야 테일러-조이, 샤를리즈 테론, 제니퍼 로렌스, 지수, 지민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자리했고, 델핀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 영부인 브리지트 마크롱과 배우 조니 뎁 사이에 앉아 쇼를 지켜봤다. 런웨이 위 거대한 역피라미드에서는 아담 커티스가 연출한 영상이 상영됐다. 과거 디올 쇼와 히치콕 영화가 교차하는 화면은 결국 신발 상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과거를 정리하고 새 출발을 알리는’ 앤더슨의 의지를 상징했다.
앤더슨은 크리스찬 디올부터 존 갈리아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까지 전임 디자이너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잊고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지금은 패션을 사랑하는 것보다 파괴하는 것이 더 패셔너블하다”며, 압박감 속에서도 아이디어 자체에 집중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컬렉션은 디올의 건축적 접근을 이어가되 H라인이나 A라인을 답습하지 않고, 로에베에서 보여준 자신만의 미학을 투영했다. 바 재킷은 인형처럼 축소됐고, 버블 드레스와 퍼프 스커트, 플리세 새틴 톱, 네글리제 등 다양한 실험이 이어졌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함께 이끄는 디자이너로서, 그는 상호 대화를 강조하며 커플 매칭 룩과 미니스커트로 재탄생한 카고 쇼츠 등을 제안했다.
실용주의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를 겨냥한 접근도 눈에 띄었다. 과감하게 커팅한 데님 스커트, 수백 개의 스캘럽 장식이 달린 미니 주농 드레스 등 장인정신과 환상을 결합한 작품들이 쇼를 채웠다. 앤더슨은 “디올은 스스로 불타고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집”이라며, 그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환상으로 승화시켰다.
액세서리 역시 강점이었다. 아카이브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은 ‘시갈’ 백은 히트 아이템으로 기대됐고, 니나 크리스텐과 함께 완성한 로퍼와 뮬은 선택지를 풍성하게 했다.
쇼가 끝나고 앤더슨은 기립 박수 속에 무대에 올랐다. 디올은 죽었다. 그러나 디올은 다시 태어났다.
| 발망 Balmain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2024 메트 갈라에서 타일라가 착용해 화제를 모았던 ‘모래 드레스’를 출발점 삼아, 이번 시즌 컬렉션 전체를 바닷가 무드에 바쳤다. 사루엘 팬츠와 패러슈트 팬츠, 어깨를 흘러내리는 오픈 니트 스웨터, 가죽·코튼 블루종, 드레이핑 저지 톱 등으로 이전보다 한층 캐주얼하고 여유로운 발망을 선보였다.
런웨이에는 수영 후 수건을 두른 듯한 스트랩리스 드레스, 긴 프린지가 달린 마크라메 룩, 의상과 슈즈, 백에 가득 달린 조개 장식들이 등장했다. 루스테잉은 다시금 모래를 성형한 듯한 브라톱과 뷔스티에를 내놓으며, 80주년을 맞은 하우스에 보다 간결하고 친근한 패션 언어를 제시했다.
자수 드레스를 대신해 그는 조개껍데기와 나무 구슬을 무심히 엮어낸 브라톱과 드레스를 선보였고, 마지막에는 자수정이 몸에서 자라난 듯한 단단한 뷔스티에로 쇼를 마무리했다. 무대는 그가 26세의 나이에 발망 첫 쇼를 열었던 파리 인터컨티넨탈 르 그랑 호텔의 무도장이었다.
유럽 럭셔리 하우스들이 격변기를 맞은 지금, 14년간 자리를 지켜온 루스테잉은 “발망 아미”로 상징되는 강렬한 이미지 대신 자신감을 이야기했다. “이번 컬렉션은 갑옷이 아니라 자유에 관한 것”이라며, 바닷가가 자신에게 주는 행복과 생의 기쁨을 담아냈다.
이번 쇼는 남성복을 배제하고 여성복에 집중하며, 화려함을 절제한 채 부드럽고 단순한 방향으로 균형을 맞췄다. 루스테잉은 “패션은 한때의 ‘HYPE’가 아닌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SNS 화제성을 넘어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밝혔다.
발망의 바다는 더 이상 요란한 전쟁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와 기쁨, 그리고 영원을 향한 조용한 선언이었다.
| 꾸레주 Courrèges
니콜라 드 펠리스는 이번 시즌을 “Blinded by the Sun”이라 명명하며, 뜨거운 기후와 현실의 압박 속에서 태어난 컬렉션을 선보였다. 여름을 이비자에서 보낸 그는 문자 그대로의 태양빛과, 은유적으로 다가오는 현실의 눈부심을 동시에 담아냈다.
파리 패션위크 초대장은 블랙 선글라스였다. “쇼에 나를 데려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하얀 원형 무대 위에서 펼쳐진 쇼는 태양과 맞서는 동시에 세상을 가리고 싶은 욕망을 표현했다.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은 베일이 드리워진 야구 모자는 얼굴 전체를 덮었고, 얇은 원단은 미니스커트 안에 삽입돼 옆트임 사이로 비키니 톱을 드러냈다. 은폐와 노출을 동시에 구현한 장치였다.
사운드트랙 속 일기예보가 기온 상승을 알리자, 의상은 점점 벗겨졌다. 백리스 수영복 톱은 드롭 웨이스트 A라인 미니드레스와 결합되었고, 가죽 재킷의 소매는 지퍼를 열어 맨팔을 드러냈다.
드 펠리스는 창립자 앙드레 꾸레주가 즐겨 사용한 패브릭 벨트를 겹겹이 쌓아 반짝이는 비닐 톱·스커트·드레스를 만들었고, 브랜드의 시그니처 체크를 길게 변주해 태양광 패널을 연상시켰다. 조명이 강해질수록 관객들은 실제로 선글라스를 꺼내 들었고, 모델들은 자동차 햇빛가리개에서 착안한 단단한 패널 드레스로 태양을 가렸다. “겉보기엔 경직돼 보여도 앉을 수도 있고, 움직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강한 테크니컬 감각을 지닌 드 펠리스는 종종 복잡한 구조에 치중하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한층 경쾌하고 가벼운 접근을 택했다. 그는 메시지를 단순히 전했다. 세상은 이미 충분히 복잡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