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물음 속 베니스 지속가능성 패션 포럼 개최
-反 ESG 흐름 속에도 지속가능성을 미래 전략으로 재확인한 지속가능성 패션 포럼 -초저가 패션·규제 불균형·공급망 신뢰 등 EU 시장 구조적 과제 직면 -투명성과 연대를 중심으로 공급망 전환을 가속해야 한다는 산업 합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경기 침체, 세계 정세의 긴장, 그리고 ESG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커지면서 패션 산업은 다시 방향을 점검해야 하는 시점에 놓였다. 그러나 10월 24~25일 베니스에서 열린 제4회 ‘지속가능 패션 포럼’의 결론은 분명했다. 멈출 이유는 없으며, 지금이야말로 실행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패션업계는 지속가능성을 ‘부담이 되는 규제’가 아니라 ‘미래 경쟁력을 위한 전략’으로 바라보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이탈리아 밀라노의 가톨릭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파르시(Vittorio Emanuele Parsi)는 이번 포럼의 주제를 “어떤 미래를 모델로 선택할 것인가”라고 설명했다. 같은 대학의 경제학자 카를로 코타렐리(Carlo Cottarelli)는 “이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산업, 학계, 정책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인 이번 포럼에서 확인된 공감대는 명확했다. 지속가능성은 멈추는 논의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전환하기 위한 핵심 축이며, 이는 개별 브랜드가 아닌 공급망 전체가 함께 움직일 때 현실이 된다는 점이었다.
유럽이 직면한 규제, 경쟁의 현실
이번 포럼의 공동 주최사인 TEHA 그룹은 보고서를 통해 EU 패션 산업이 1990년 이후 탄소 배출을 37% 감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30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18% 추가 감축과 약 44억 유로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TEHA 그룹의 카를로 치치(Carlo Cici)는 “기다림의 비용이 행동의 비용보다 크다”고 말하며, 지연된 대응이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세계 흐름은 단일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미국은 ESG 규제를 후퇴시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중국은 청정에너지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초저가 패션 플랫폼으로 유럽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유럽은 친환경 규제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반발 속에서 정책 방향을 두고 혼란을 겪는 중이다. 이탈리아 지속가능성 발전 연합 ASviS(Alleanza Italiana per lo Sviluppo Sostenibile)의 엔리코 조반니니(Enrico Giovannini)는 “유럽은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현재를 유지하려는 관성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유럽 기업만 규제를 준수하고 해외 초저가 패션 기업은 규제를 피해가는 현실은 불균형한 경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유럽 패션협회 유라텍스(Euratex)의 마리오 조르제 마차두(Mario Jorge Machado)는 이를 “깨끗한 유럽을 더러운 세계 속에 고립시키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들이 하청 공장 문제로 논란을 겪은 사건은 공급망 신뢰에 또 다른 타격을 남겼다. 형사 처벌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윤리적 이미지는 흔들렸다. 제조 구조 전반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고, 외부 경쟁 이전에 내부 신뢰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투명성과 연대를 근간으로 한 공급망 해법
브랜드들은 공통적으로 공급망 투명성과 공동 대응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케어링(Kering), 프라다, 샤넬, 제냐 등이 참여한 ‘패션 팩트’는 유럽 공급망 탄소 감축을 위한 ‘유럽 가속화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프라다 그룹의 키아라 모렐리(Chiara Morelli)는 “럭셔리 산업은 대량생산 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 혁신에 시간이 더 걸린다”며 연대의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아르마니는 법원의 관리 이후 공급망 추적 시스템을 도입해 10개월 만에 개선을 이루며, 투명성 확보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한편 이탈리아는 생산자책임제(EPR) 도입을 추진하며 섬유 폐기물 문제를 제도적으로 다루려 하고 있다. 이탈리아 패션섬유업계를 대표하는 연합 기관인 콘핀두스트리아 모다(Confindustria Moda)는 이를 통해 “섬유 재순환 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산업계는 규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현실에 맞는 ‘작동 가능한 규제’를 원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은 선택이 아닌 산업 전략
이번 포럼의 결론은 명확했다.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브랜드 이미지나 윤리적 선택이 아니라,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적 과제라는 것. 공급망 감시 강화, 공동 기준 마련, 기술 도입, 순환 시스템 구축 등 다층적인 변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방향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패션 산업은 여전히 혼란 속에 있지만, 업계는 이 흐름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하고 있다. 베니스 포럼은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