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가 사랑한 포토그래퍼 유르겐 텔러 전시 ‘You Are Invited’ 개최

-61세의 유르겐 텔러, 사랑·신앙·삶을 관통하는 회고적 전시로 ‘지금의 자신’을 고백 -고전 그리스 신화와 바티칸, 리투아니아의 설원까지 개인적 서사가 세계의 풍경과 만나는 지점 포착

2025-11-03     유승현 에디터
전시장 앞에 선 유르겐 텔러. ©Juergen Teller

20세기 패션계에서 가장 도발적인 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자신을 다시 들여다봤다. 특유의 어둡고 냉소적인 유머 대신, 사랑·신앙·가족·삶의 의미를 솔직하게 끄집어냈다. 아테네 교외의 오래된 플라스틱 공장을 개조한 갤러리 ‘오나시스 레디(Onassis Ready)’에서 12월 31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You Are Invited>를 통해서다. 그의 이번 개인전은 공간의 개관을 알리는 첫 전시이자 작가의 중기 회고전이다. 이전까지 케이트 모스, 빅토리아 베컴, 샬롯 램플링 등 전세계 유명인사를 촬영한 패션 포토그래퍼이지만, 이번 전시는 단순히 유명인 피사체를 담아낸 것 이상의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번째 아내이자 협업 파트너인 도빌레 드리지테(Dovile Drizyte)와의 결혼 이후, 세 번째 아이를 얻은 뒤 변화한 시선, 그리고 2024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를 촬영한 작업까지 유르겐 텔러는 ‘지금의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보고, 무엇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솔직히 보여주는 전시예요. 아내와의 관계, 아이, 그리고 세상을 대하는 내 감정들이 모두 여기 녹아 있죠. 내 경력에서 가장 강렬하고 완벽한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유르겐 텔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을 믿고, 두려움 대신 감각적으로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한다.

〈You Are Invited> 전시 전경. ©Jergen Teller/Courtesy of Onassis Foundation

 

그리스 신화에서 찾은 사랑의 우너형

전시는 시간과 공간, 세대를 아우른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가 중요한 축을 이룬다. 유르겐 텔러는 아리스토파네스가 전한 ‘인간은 원래 하나였다가 신의 벌로 둘로 나뉘어 평생 서로를 찾아 헤맨다’는 사랑의 신화를 이미지로 번역했다. 그는 도빌레 드리지테와 서로의 몸을 겹쳐 찍은 누드 사진을 통해 “둘이 한 존재로 다시 합쳐지는 감각”을 시각화했다. 리투아니아 발트해 연안의 쿠로니안 사구에서 두 사람은 모래 언덕을 구르며 팔·다리가 얽히는 장면을 연출했다. 유르겐 텔러는 “삶이란 그렇게 굴러 떨어지는 것 같다. 어려움과 즐거움, 복잡함과 단순함이 뒤섞인 채로”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 신화를 개인적 은유로 재해석한다. “우린 늘 함께 있고, 서로의 몸과 생각이 스며드는 느낌이에요. 두 존재가 하나로 섞이는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죠.” 전시에는 리투아니아의 겨울 풍경도 등장한다. 눈 덮인 숲과 순록, 여우, 얼음 결정처럼 맺힌 나무의 서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생명과 신앙에 대한 경외를 드러낸다.

©Jergen Teller/Courtesy of Onassis Foundation

자연과 믿음의 장면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축은 ‘믿음’이다. 비록 유르겐 텔러는 종교를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신앙심 깊은 아내의 권유로 2024년 교황 프란치스코를 촬영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지우데카 여성 교도소에서 이뤄진 촬영은 그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단 두 시간이었지만 여섯 시간처럼 느껴질 만큼 강렬했어요. 교황이 들어서자 거칠던 수감자들이 어린양처럼 변했죠. 그 순간의 공기와 변화가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후 이탈리아 교회에서 여성들을 촬영한 시리즈를 이어갔다. 베일을 쓴 여성, 기도 중인 여성, 그리고 바로크 양식의 성당에서 현대적인 의상을 입은 모델들. 화려한 패션조차 성스러운 공간 안에서는 작고 겸손하게 보인다. 유르겐 텔러는 “성당 내부의 빛과 조각, 대리석, 목조 장식들은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형태”라며, “그 빛이 떨어지는 방식 자체가 신성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Jergen Teller/Courtesy of Onassis Foundation

성숙의 시간

61세에 접어든 유르겐 텔러는 여전히 변화를 향해 몸을 던진다. “지금의 나는 더 대담하고, 솔직하며, 확신이 있어요. 위험을 감수할 줄 알고, 직감을 믿죠.” 그는 리투아니아 사구에서의 합성 누드 사진이 “어쩌면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고 웃으면서도, “그 위험을 감수했기에 지금의 진심이 담겼다”고 말한다. 그에게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갱신’의 선언이다. “이 전시를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선택을 믿고, 감각적으로 세상을 느끼길 바랍니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우리에겐 사랑과 평화, 용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는 덧붙인다. “세상이 부정적이라 말하기는 쉽죠. 하지만 나는 내 삶을 주도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무언가를 함께 쌓아가며,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습니다. 남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내 감각으로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