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배 칼럼] 한미 당분간 높은 금리 수준 유지 ‘Higher for Longer’
지난달 무섭게 상승하던 금리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전 세계 금리 향방을 결정하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지난달 16년 만의 최고치인 5%를 기록하더니 11월 들어 4.5%까지 하락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3년 국채 금리도 4%에서 3%대로 하락했다. 다만 국내외 불안정한 정세를 고려하면 아직 금리 하락을 전망하기에는 일러 보인다.
지난주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글로벌 금융시장은 급속히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제 금리 인상은 끝났다는 시장의 기대감이 퍼지고 있지만 아직도 국내 대출 금리와 물가 상승세는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장기전으로 전개되는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과 최근 발발한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은 세계 경제ㆍ국제 금융 시장 여건을 전방위적으로 위축시키면서 글로벌 고물가ㆍ고금리ㆍ고환율 (이하 “3高”) 문제가 실물과 금융의 복합위기 우려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국내 소비자 물가도 3개월 연속 3%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10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3.8%로 지난 8월(3.4%)부터 3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이며 4%에 근접했다. 특히 우유, 채소, 과일 등 식료품 물가의 오름세가 두드러지는 등 서민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고물가는 원유, 곡물 등 전 세계 상품의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 상승으로 쉽게 낮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중동 지역 분쟁이 악화할 때 국제유가 상승 폭이 확대되고 이로 인한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이 크게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천정부지로 솟은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고 있어 금리를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당분간 높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는 ‘더 높게 더 길게 정책 (Higher for Longer Policy)’ 을 펼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우리나라는 쉽사리 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는, 인하할 수도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과 미국 간의 기준 금리 차이가 2%포인트로 벌어지면서 외국 자본의 유출 우려와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올려야 하는 입장이지만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국내 경기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가계 부채 (GDP의 108%) 등을 고러하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 한국은행의 금리 결정이 진퇴양난이다.
불안정한 환율도 문제다. 지난 연말 1달러당 1,190원이던 원 달러 환율이 10월에는 1,350원대를 웃돌더니 미국의 금리 동결 결정으로 다시 1,300원대 초반까지 하락했다. 다만 중동 지역의 전쟁 확산 가능성에 따라 안전 자산 선호 심리가 작용할 경우 달러 수요가 증가하고 외국 자본 유출이 커지면 환율 상승 가능성도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환율 변동성이 커질수록 정부의 외환 정책과 기업의 수출 전략 수립에 어려움이 더해진다. 만약 달러 강세가 지속되어 환율이 1,400원 이상 유지된다면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는 한편 투자 자금의 유출을 촉발해 금융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사용하여 10월 말 외환보유고가 4,128억 불로 감소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외화보유액 규모는 세계 9위로 상당히 높아 외환 위기를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최근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높은 수준의 “3高” 현상은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 2분기에 101.7%를 기록했다. 특히 700조 원이 넘는 주택담보 대출은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감으로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어 정부의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시중은행의 주택담보 대출 금리가 연 7%를 넘어서서 금리가 더 오르고 집값이 떨어지면 부동산 시장뿐 아니라 금융시스템까지 충격을 받게 된다. 향후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 무리하게 대출받은 투자자들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기업부채도 크게 늘어 5대 시중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이 지난달 말까지 60조 원 넘게 증가하였다. 기업들은 금리가 오르면서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자,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기업 대출 규모가 늘어나면서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9월 말 기준 기업 부채 규모는 GDP 대비 124.1%를 기록하여 외환위기(113.6%)와 글로벌 금융위기(99.6%) 때보다 높다.
국내 금융시장은 언제든지 ‘긴축 발작’ (미국의 국채 금리가 급등하며 신흥국의 증시와 통화 가치가 동반 급락하는 현상)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다. 따라서 가계는 지출을 최소화하고 새로 빚을 얻기보다는 기존 대출을 갚아나가는 전략이 현명하다. 또한 기업은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에 대응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정책 당국은 만에 하나 발생할 수도 있는 금융 위기에 대비하는 선제적인 위험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제 위기나 금융 위기는 10년 또는 20년 주기로 반복된다. 워렌 버핏은 “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누가 벌거벗고 수영했는지 알 수 있다”라고 했다. 90년대 아시아 외환 위기나 2000년대 글로벌 금융 위기 등 지나간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위험 관리를 잘하고 이를 절호의 투자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세에 역행하기보다는 순응하며 필요하다면 위기 대응 전략을 준비해야만 한다.
글: 전용배
에디터: 최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