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배 칼럼] 추락한 엔화의 반등을 기대하며 일본 경제 재점검

2024-07-29     전용배

이번 7월에 도쿄를 10여 일 여행했다. 일본 경제의 활기를 체험할 좋은 기회라 내심 많은 것을 보고자 하루에 2만 보씩 걷기도 하고 도쿄를 벗어나 근교 중소도시를 여행하며 식당과 쇼핑센터도 방문했다. 웬만한 식당에 줄서기는 기본이고 긴자의 백화점과 오모테산도 명품샵에는 여행자들과 일본 내국인의 소비 열기를 엿볼 수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활기찬 일본 경제를 보면서 일본 주식시장의 추가 상승 가능성과 엔화의 반등 여부를 확인하는 기회였다.  

일본 기업들은 아직도 임금 인상에 인색한 분위기다. 정부의 압박과 노조의 임금투쟁으로 올해 상반기 임금 인상율은 5.1%를 기록하며 33년 만에 5%를 넘어섰다. 하지만 엔저로 인한 높은 수입 물가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5%를 넘어서면서 실질 임금 상승률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어 소비 진작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분위기다. 그래도 일본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꾸준히 높아지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일본 주식시장의 대표 지수인 니케이225는 지난 10년간 160% 이상 상승했다. 우리나라의 ISA 제도와 유사한 일본의 NISA 제도는 다양한 세제혜택으로 개인투자자의 주식 투자를 적극 유도해 일본 국민의 재테크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장기적 안목으로 2013년 아베 정부 때부터 실시한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들의 수익성 향상과 맞물려 외국인 매수세까지 몰리면서 30년 만에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니케이225 지수는 4만 2천 포인트까지 상승했다가 최근 갑작스러운 엔화 강세로 다시 4만 포인트 아래로 내려와 있다. 환율에 민감한 수출 관련 회사인 토요타, 혼다 등 자동차회사와 도쿄일렉트론 등 반도체 칩 장비 제조업체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달러당 엔화 환율은 2022년 초 120엔, 2023년 초 130엔에서 이달 초에는 162엔까지 상승하며 엔화 가치가 1990년 이래 최저치로 하락했다.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까지 지속된 엔화 약세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는 급격히 상승한 물가를 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일본은 내수 회복을 위해 금리를 동결하면서 미국과의 금리차가 5% 이상 벌어진 것이 주요인이다. 또한 엔캐리 트레이드도 엔화 약세에 크게 작용했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일본의 낮은 금리를 활용해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달러 또는 제3국의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하여 수익을 올리는 거래를 말한다. 기관투자자들이 공격적으로 엔캐리 트레이드를 늘려 현재 잔고가 사상 최고인 20조 엔에 달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일본 개인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 특히 빅테크 주식 투자로 주가 및 달러 가치 상승의 두가지 수익을 챙기면서 미국 주식 투자 열풍을 불러와 달러 매수가 늘어난 것도 엔화 약세에 영향을 끼쳤다. 엔화 약세 덕을 본 수출 기업들도 수출 대금을 국내 송금 대신 해외에 보유하게 되면서 엔화 약세의 한 배경이 되었다.

엔화 약세는 일본 경제에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동시에 작용한다.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토요타 등 대형 수출 기업의 수익성이 급격히 좋아지고 주식시장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또한 엔저로 인한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관광 수지가 좋아지면서 경기가 저변에서부터 살아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엔저는 일본의 수입 가격을 끌어 올려 물가 상승으로 연결되어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도 있어 일본 정부는 엔화 약세를 그냥 둘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9월에 예정된 총리 선거를 고려하면 어떤 형태로든 엔저의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원·엔 환율은 과거 10년 평균이 100엔당 998원이었으나 7월 초에는 과도한 엔저 영향으로 100엔당 850원대까지 하락했다가 최근 890원대로 상승했다. 향후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 인하와 일본의 금리 정상화 즉 금리 인상으로 미일간의 금리 격차가 점차 줄어들면 엔화 가치 상승이 예상된다. 따라서 엔화 예금이나 엔화에 투자하는 금융상품, ETF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환율이 낮아질 때마다 사 모으는 것도 좋은 투자 전략이다. 하지만 엔화 가치 상승은 일본 주식시장을 끌어내리는 요인도 되어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 과거에도 엔화 강세는 주가 하락, 엔화 약세는 주가 상승의 상관관계가 있어 향후 엔화 흐름은 주식시장에도 크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