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마러라고 합의’와 글로벌 환율 전쟁의 서막

-트럼프, 달러 약세 전략을 통한 무역 재편 시도 -한미 금리 격차와 위안화 영향으로 원화 약세 압력 가중되는 한국 경제

2025-05-13     전용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에 전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의 선전포고의 배경에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스티브 미란이 작성한 ‘미란 보고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가 자리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무역 및 재정 적자를 해소하려면, 우선 징벌적 관세로 상대국을 압박한 뒤 환율 조정을 통해 달러 약세를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미국이 관세와 안보 우산을 무기로 달러화 약세에 대한 다자간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구상으로, 1985년 9월 미국이 일본·서독 등과 달러 가치를 낮추기 위해 체결한 ‘플라자 합의’와 유사하다.

 

©블룸버스통신

이 보고서에서 제시하는 핵심 전략이 바로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별장인 마러라고에 각국 정상들을 초청해, 달러 가치를 낮추는 다자간 통화 합의를 체결하자는 것이다. 미국이 인위적으로 달러 약세를 유도해 무역 균형을 이루겠다는 의도다.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라는 구조적 모순에 직면해 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무역적자를 감수하면서 달러를 공급한다. 반면에 무역 상대국들은 낮은 자국 통화가치를 활용해 무역흑자를 내고, 상품 대금으로 받은 달러로 미국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달러 강세가 유지된다. 이로 인해 미국은 국채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재정 적자가 지속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경상 및 재정 적자는 누적돼 왔고, 달러는 과대평가되어 실물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환율은 두 통화 간의 교환비율로 그 나라의 경제 펀더멘털, 대외건전성, 성장률, 인플레이션, 금리 차이, 지정학적 리스크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결정된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는 성장세가 둔화되어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도 미국(2%대)보다 낮은 1%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경제 펀더멘털 약화는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은행은 미국과의 기준금리(한국 2.75%, 미국 4.5%) 차이가 더 벌어질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면 미국 연준(Fed)은 관세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로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있다. 현재의 금리 차(1.75%p)가 더 확대되면 외국 자본의 유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원화 약세(환율 상승)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 미국연방준비제도(Fed)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국제 자본도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원리를 감안하면 외국 자본의 해외 유출 가능성도 높아져 환율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우리 원화는 중국 위안화와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 중국은 자본 및 외환시장 자유화 수준이 낮아 외국 자본이 직접 투자·회수하기가 쉽지 않고, 대신 원화가 대체 통화(Proxy Currency)로 활용된다. 따라서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위안화 환율이 변동하면 원화도 비슷한 폭으로 영향을 받는다.

최근 대만 달러가 이틀간 9% 정도 급격히 절상되었을 때 아시아 주요 통화가 동반 절상됐고, 원화 역시 달러 대비 1430원에서 1380원까지 약 4% 절상됐다. 이처럼 주변국의 환율 변동이 다른 국가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전염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은 관세 협상 이후 환율 협상에서도 강한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환율은 수출, 성장, 물가, 고용 등 거시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국 통화 강세를 용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은 성장 둔화와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위안화 강세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최근 중국은 기준 금리를 내리는 효과와 유사한 지급준비율을 대폭 인하해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며 내수 경기 부양에 힘쓰고 있다. 또한 높은 관세로 수출이 타격을 입자 다양한 내수 소비 촉진 정책을 내놓고 있어 미국의 일방적인 환율 절상 압력을 들어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만 유럽과 일본은 그동안 통화가치 절하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해왔으므로, 일부 절상은 수용할 수 있어도 중장기적으로 큰 폭의 통화 강세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Financial Times는 현재 달러화가 1980년대 중반, 2000년대 초반 이후 가장 고 평가된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 원·달러 환율이 1350~1450원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한다.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환율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달러 등 외화가 필요하다면 원·달러 환율이 1350~1380원일 때 분할 매수하고, 달러를 매도할 계획이라면 1400원대가 적정 수준으로 보인다. 미국 주식에 투자한 경우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일 때 환헷지를 권장하며, 1300원 초반대라면 연간 약 2%대의 환헷지 비용을 감안하면 굳이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