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 2026 CRUISE
- 르네상스의 품격과 고전 시네마의 정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올 크루즈 2026 - 순백의 시스루 드레스와 구조적인 테일러링이 그려낸 여성성의 새로운 초상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디올 크루즈 2026 컬렉션과 함께 자신의 고향 로마로 돌아왔다. 고요한 정원을 배경으로 펼쳐진 이번 쇼는 로마 외곽의 ‘빌라 알바니 토를로니아(Villa Albani Torlonia)’에서 펼쳐졌다. 18세기, 추기경 알렉산드로 알바니가 고대 조각과 예술품을 수집·전시하기 위해 지은 이 저택은 고전주의 미학이 정원과 건축 곳곳에 깃든 유서 깊은 공간이다. 평소 외부에 거의 공개되지 않는 이 비밀스러운 장소는 오늘날, 치우리의 시선과 디올의 상상력이 더해져 한 편의 시네마틱한 무대로 재탄생했다.
디올 2026 크루즈 컬렉션은 20세기 로마 사교계의 전설적인 인물, 미미 페치블런트(Mimì Pecci-Blunt)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1930년 그녀가 파리에서 주최한 ‘발 블랑, 화이트 볼(Bal Blanc)’은 순백의 의상을 갖춰 입은 게스트들이 모이는 무도회로, 맨 레이(Man Ray)의 사진과 함께 예술계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치우리는 이 전설적인 밤을 이번 컬렉션에서 ‘상상의 무도회(Bal de l’Imagination)’라는 테마로 풀어냈다. 쇼에 참석한 게스트들 역시 블랙 또는 화이트 드레스 코드를 따랐고, 이는 컬렉션의 색감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몰입감을 더했다.
르네상스의 절제된 품격과 고전 시네마 여주인공들의 존재감 또한 룩 하나하나에 정교하게 스며들었다. 크림과 아이보리 시스루 드레스, 버건디 벨벳, 밀리터리 터치가 더해진 울 코트, 그리고 젠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를 떠올리게 하는 매니시한 테일러링까지. 각기 다른 여성의 서사를 품은 룩들이 유려하게 이어졌고, 구조적인 트렌치 코트와 오버사이즈 바이커 재킷은 그 흐름에 긴장감을 더하며 강인한 여성성을 디올 특유의 우아함으로 풀어냈다.
피날레는 이탈리아 감독 마테오 가로네(Matteo Garrone)와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고전 영화 의상을 입은 인물들이 대저택과 정원 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현실과 환상이 스치는 장면을 연출했다. 치우리는 로마 영화계의 대표 아틀리에 티렐리(Tirelli)와 함께, 비스콘티의 '표범(Il Gattopardo)'와 스코세이지의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 속 의상을 디올의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쿠튀르와 영화가 만나는 지점을 탐색했다. “두 세계는 생각보다 더 닮아 있어요. 그래서 그 경계를 실험해보고 싶었죠,” 그녀는 말했다.
이번 쇼는 단순한 귀향의 의미를 넘어 영화와 도시, 그리고 쿠튀르에 대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애정을 담은 조용한 헌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