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F/W 오트 쿠튀르 하이라이트 #1

- 하우스의 미학이 집약된 아트피스가 펼쳐진 파리 오트 쿠튀르 위크 - 스키아파렐리·아이리스 반 헤르펀·라훌 미슈라·샤넬

2025-07-09     김민정 에디터

오트 쿠튀르의 열기로 한껏 달아오른 파리. 스키아파렐리의 조형적 실험부터 샤넬의 절제된 우아함까지, 하우스의 미학이 집약된 아트피스들이 런웨이를 수놓았다. 이번 시즌, 주목할 만한 순간들을 소개한다.

 

스키아파렐리

Schiaparelli Fall 2025 Couture

스키아파렐리는 아카이브에 조형적 언어와 첨단 테크놀로지를 결합하며 또 한 번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다니엘 로즈베리가 자신의 창의성을 재정비해 선보인 이번 컬렉션은, 1930년대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실험정신이 빛난 무대였다.

 

Schiaparelli Fall 2025 Couture

스트레이트한 숄더 라인과 슬림한 퍼프 소매, 실버 시퀸으로 장식된 블랙 재킷, 그리고 1938년 엘시 드 울프를 위해 제작된 ‘베르사유의 아폴로’ 케이프를 블랙 튤로 재해석한 룩까지. 고전적인 실루엣에 실험적 감각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Schiaparelli Fall 2025 Couture

다니엘 로즈베리의 상상력과 기술력이 결합해 탄생한 이번 시즌의 상징적 오브제는 단연 ‘비팅 하트’ 네크리스였다. 인체 심장을 닮은 주얼리로 실제 박동하는 듯한 움직임을 구현한 메커니즘이 더해져, 초현실적인 긴장감을 자아냈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미학과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유산을 동시대적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쇼가 끝나기도 전에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퍼지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아이리스 반 헤르펜

Iris Van Herpen Fall 2025 Couture

아이리스 반 헤르펀은 이번 시즌에도 생명과 기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또 하나의 경이로운 쿠튀르 무대를 선보였다. 하루 8시간의 빛과 적절한 온도를 필요로 하는 약 1억 2,500만 개의 발광 조류를 활용한 쇼는 유기체가 움직임에 따라 푸른빛으로 반응하며 마치 해양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몰입감을 자아냈다. 현대 무용의 선구자 로이 풀러(Loïe Fuller)에게서 영감을 받은 퍼포먼스 역시 주목할 만했다. 날개 형태의 장치를 착용한 퍼포머가 닉 버스탕(Nick Verstand)의 레이저와 상호작용하며 빛과 움직임의 환상을 구현한 장면은, 반 헤르펀이 말한 “우리가 바다에서 생명을 빼냈던 방식에 대한 은유”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순간이었다.

 

Iris Van Herpen Fall 2025 Couture

여기에 조향사 프란시스 커정(Francis Kurkdjian)이 연출한 맞춤형 향이 공간에 퍼지며, 감각의 층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수증기처럼 흘러내리는 드레스와 소용돌이치는 조형적 실루엣은 몽마르트르 엘리제 뮤직홀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마치 지구의 심연을 유영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라훌 미슈라

Rahul Mishra Fall 2025 Couture

라훌 미슈라는 인도의 수피즘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사랑의 7단계를 주제로 한 서정적인 쿠튀르 컬렉션, 'Becoming Love'를 선보였다. 이번 쇼는 사랑의 시작인 ‘끌림(attraction)’부터 ‘죽음(death)’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흐름을 따라 전개됐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회화를 모티프로 정교한 자수와 시적인 실루엣을 결합해 사랑의 서사를 시각화한 것. 금빛 자수로 완성된 심장 아머가 ‘끌림’을, 진주와 금빛 패치워크가 어우러진 룩은 ‘헌신’과 ‘경외’를, 그리고 어두운 자카드 드레스는 ‘죽음’을 은유하며 쇼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Rahul Mishra Fall 2025 Couture

파리 콜레주 데 베르나르댕(Collège des Bernardins)의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펼쳐진 이번 컬렉션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전하며 더욱 깊은 울림을 남겼다. 특히 클림트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룩들은 인도 장인의 손끝에서 완성된 자수와 미슈라 특유의 시적 감성이 어우러져, 이번 시즌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샤넬

Chanel Couture Fall 2025

마티유 블라지의 데뷔를 앞둔 샤넬은 이번 시즌, 깜봉가 31번지 쿠튀르 살롱의 정취를 되살린 무대를 통해 하우스의 유산을 섬세하게 환기시켰다. 에크루, 아이보리, 브라운, 그린, 블랙 등 자연에서 차용한 컬러 팔레트와 깃털, 부클레, 크리스털 디테일이 어우러진 맥시멀한 실루엣의 코트를 중심으로 절제된 우아함을 드러냈다.샤넬의 시그니처인 트위드는 자연의 질감을 은은히 반영하며, 화이트 자수 브레이드가 더해진 코트드레스, 플럼과 그린 톤의 모헤어 수트, 점퍼 실루엣으로 재해석된 재킷 등 다채로운 룩으로 전개됐다.

 

Chanel Couture Fall 2025

컬렉션의 하이라이트는 가브리엘 샤넬이 풍요의 상징으로 여겼던 밀 이삭 모티프. 시폰 드레스의 깃털 장식, 웨딩드레스의 넥라인 자수, 골드 주얼 버튼과 쉐브론 형태의 팬츠 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며 컬렉션 전반을 유기적으로 엮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