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 거장, 조르지오 아르마니 타계

-밀라노에서 영면에 든 거장, 조르지오 아르마니 -패션을 넘어 삶의 방식을 바꾼 선구자

2025-09-05     김다영 에디터
조르지오 아르마니 @giorgioarmani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향년 91살의 나이로 별세했다. 20세기 후반 패션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셀러브리티와 패션의 강력한 결합을 이끈 개척자였던 그는, 부드러운 테일러링으로 남녀의 워드로브를 혁신하고, 뷰티·인테리어·호스피탤리티로 영역을 확장해 ‘아르마니’라는 글로벌 제국을 세운 인물이다.

1934년 이탈리아 피아첸차에서 태어난 아르마니는 라 리나센테 바이어와 히트맨(Hitman)에서의 경험을 거쳐 1975년 세르지오 갈레오티와 함께 Giorgio Armani S.p.A.를 설립했다. 1980년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 의상을 맡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1980년대에는 Emporio Armani와 A|X Armani Exchange 등 다층 브랜드와 라이선스 전략으로 회사를 고속 성장시켰다. 이후 로레알과의 장기 파트너십을 통해 세계적 규모의 뷰티 프랜차이즈를 일궜으며, 2005년에는 쿠튀르 라인 Armani Privé를 론칭했다. 2017년에는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Giorgio Armani / Emporio Armani / A|X 세 축으로 단순화해 경쟁 환경에 맞춘 구조를 완성했다.

배우 리처드 기어가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 ©WWD

그의 세계관은 패션을 넘어 도시 풍경에도 스며들었다.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2010)와 밀라노(2011)의 Armani Hotel, 아카이브 전시 공간 Armani/Silos(2015)는 그의 미학을 건축과 문화의 언어로 각인시켰다. 또한 EA7을 통해 이탈리아 올림픽·패럴림픽팀을 후원하고, 농구팀 올림피아 밀라노를 운영하며 스포츠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르마니는 일생 내내 ‘독립성’을 지켜냈다. 매각, 기업공개, 외부 파트너 영입을 거부하며, 2016년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재단을 설립해 자신의 가치와 정신을 제도적으로 계승하도록 했다. 그는 “재단은 공익적이고 사회적인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동시에, 아르마니 그룹의 지배 구조 자산을 보호해 시간이 지나도 안정성을 유지하게 할 것”이라며, 자율성과 독립성, 청렴과 정직, 혁신과 탁월성, 신중하고 균형 잡힌 재무 운영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Stephen Sullivan/WWD

니만 마커스 패션 어워드(1979),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훈장,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CFDA 국제디자이너상과 평생공로상, WWD John B. Fairchild Honor(2019) 등 수많은 권위 있는 상은 그의 위상을 증명한다. 절제와 구조의 미학, ‘그레이주(greige)’로 상징되는 은은한 팔레트, 유연한 소재의 해체적 수트는 동시대 워크웨어의 문법을 새로 썼다.

패션과 뷰티, 그리고 건축으로까지 확장된 그의 발자취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이것이 ‘패션의 제왕’ 아르마니가 남긴 본질적 업적이며, 앞으로도 이어질 영원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