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타운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루카뇨 음딩게 / Courtesy of LUKHANYO MDINGI
케이프타운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루카뇨 음딩게 / Courtesy of LUKHANYO MDINGI

 

“성은 어떻게 발음하죠? 루카뇨-.” “음딩게. 루카뇨 음딩게예요.” ‘게’는 정확한 발음이 아니다. ‘기’와 ‘게’의 중간 혹은 ‘기-에’처럼 들린다. 지금은 사라진 아래 아 발음처럼 말이다. 루카뇨가 물었다. “지금 그곳은 어느 계절인가요?” “여름요. 비가 아주 많이 와요.” “아, 여기는 겨울이에요. 날씨는 화창하지만 바람이 차갑죠.”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는 도톰한 후드 스웨트 셔츠를 입고 머그잔의 음료를 홀짝였다. 그는 저녁 6시에 인터뷰 약속을 잡아 미안해했고 시차가 큰 다른 나라의 디자이너와 어떻게 인터뷰하는지 궁금해했다. 보통은 이메일 인터뷰를 한다고 답했지만 요즘은 줌이 대세인 듯하다. 우리나라보다 일곱 시간이 느리고 계절은 반대인 케이프타운에서 모니터 화면 앞에 앉은 이는 패션계가 주목하는 신진 디자이너다. 지난해 LVMH 칼 라거펠트 프라이즈를 수상하고 네타포르테와 셀프리지 백화점 등 주요 리테일러가 주목하는 그의 의상은 아름다운색감과 아프리카 장인의 수공예를 강조해 순수한 활기와 생명력이 느껴진다.

WWD KOREA(이하 WWD)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턴 케이프주의 작은 마을 출신이라고 들었다. 그곳에서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
지 궁금하다.

LUKHANYO MDINGI(이하 LUKHANYO) 이스턴런던이라는 곳이다. 전통적인 분위기의 작은 해변가 마을이다. 어린 시절은 평범했다. 부모님과 두 아이, 조부모님, 이모, 사촌이 함께 사는 가족의 일원으로 좋은 교육을 받았다. 솔직히 정말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한다. 동네 자체는 매우 조용하고 작지만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러 올 만큼 아름다웠다. 더 이상 거기 살지 않지만. 지금은 케이프타운에 있고 여기서 지내는 게 좋다.

WWD 브랜드를 론칭한 후로 쭉 케이프타운에서 활동하고 있나?

LUKHANYO 그렇다. 2011년 케이프타운의 케이프 페닌슐라 패션 공과대학에서 패션 공부를 시작했다. 학부를 마친 후 대학원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원 졸업쇼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성복 패션 위크의 운영진인 사이먼 다이너라는 사람을 만났다. 패션 위크 프로그램에 두 명의 신진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패션쇼가 있었는데 내가 그중 한 명으로 2015년 2월 패션 위크에 참여하면서 브랜드를 시작하게 됐다.

루카뇨 음딩게 2022년 가을/겨울 컬렉션 ‘보디랜드’. / Courtesy of LUKHANYO MDINGI
루카뇨 음딩게 2022년 가을/겨울 컬렉션 ‘보디랜드’. / Courtesy of LUKHANYO MDINGI

 

WWD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패션계는 어떠한가?

LUKHANYO 사실 꽤 글로벌하다. 케이프타운 뿐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 대부분이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에 접근하거나 교류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실제로 여기 패션계에서 내가 목격하는 것은 전 세계 곳곳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젊은 세대는 패션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지금 당장 케이프타운의 길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WWD 그곳의 패션 시장도 궁금하다. 한국의 패션 시장은 소규모의 독립 브랜드가 많고 젠더뉴트럴한 캐주얼웨어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LUKHANYO 기본적으로 경제 상황에 많이 영향을 받지만 케이프타운은 대부분 합리적인 가격대에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캐주얼 스트리트웨어가 대세다. 그 외에는 토착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분위기다. 패션이나 옷보다는 음악의 영향이 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음악 신은 규모가 상당하다. 지금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스트리트 컬처와 음악이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만들어내는 문화가 주류라고 할 수 있다.

WWD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즐기는 편이다. 지인들과 팟캐스트를 제작하거나 그들을 모델로 간절기 컬렉션 룩 북을 찍기도 했다. 단편 영상도 만들고. 그런 작업이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LUKHANYO 친구들과의 협업을 즐기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성향이다. 사실 패션의 맥락에서 디자이너의 작업에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작은 진실을 나누면서 공감할 수 있는 감정과 경험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기를 정말 원한다. 팟캐스트의 경우 2020년 봉쇄령이 내려졌을 때 격리 상황에서 서로 이어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그때 가능한 매개체는 담화였다. 참여한 이들 중에는 친구도 있지만 건너서 아는 지인도 있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비슷하고 혹은 다를 수 있는지 알게 됐다. 참여자들과 함께 룩 북 이미지를 촬영했지만 처음부터 컬렉션을 위한 것이 아닌 그들의 담화를 조명하는 프로젝트였다.

WWD 사람과 개인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LUKHANYO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하는지에 흥미를 느낀다. 특히 이중적인 면에 끌린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현재의 상태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동시에 자신의 잠재력을 시험해보고 싶어 한다. 모두 내면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 조건과 이어지는 모든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한다. 내 브랜드도 기저에 인간관계가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루카뇨 음딩게라는 브랜드를 그 플랫폼으로 사용하려한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을 탐험하고 협업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기 때문에 단순히 디자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하는 것 이다. 창작과 확장을 경험하는 세계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무엇보다 인간관계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루카뇨 음딩게 2022년 가을/겨울 컬렉션 ‘보디랜드’. / Courtesy of LUKHANYO MDINGI
루카뇨 음딩게 2022년 가을/겨울 컬렉션 ‘보디랜드’. / Courtesy of LUKHANYO MDINGI

 

WWD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대가족에서 자란 배경의 영향인가?

LUKHANYO 분명 그렇다고 생각한다.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이 나의 중심과 내 존재 자체에 스며들어 있기에 내가 하는 작업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공동체 가족에서 자랐기 때문에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게 내가 길러진 방식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시기에 한 인간이자 흑인으로서 신중하게 처신해야 할 뿐 아니라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WWD 컬렉션 이야기가 궁금하다. 2016년 가을/겨울 시즌 택타일(Tactile) 컬렉션부터 수공예를 강조하는 루카뇨 음딩게 특유의 스타일이 정립됐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아티스트 아티파트라 루가에게 영감을 얻은 루카뇨 음딩게 2022년 가을/겨울 컬렉션 ‘보디랜드’. / Courtesy of LUKHANYO MDINGI
아티스트 아티파트라 루가에게 영감을 얻은 루카뇨 음딩게 2022년 가을/겨울 컬렉션 ‘보디랜드’. / Courtesy of LUKHANYO MDINGI

 

LUKHANYO 각각의 컬렉션이 모두 중요하고의미 있다. 택타일은 지금은 고인이 된 동료 디자이너이자 친구 니콜라스 쿠츠와 협업한 컬렉션이다. 수공예를 시도해보고 싶었고 그 친구가 그쪽 전문가였다. 내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요소를 담는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만들었다. 수작업으로 직조한 텍스타일로 우리나라의 자연 풍경을 담았다. 나는 개별적인 컬렉션이 브랜드의 특정 시기와 특정 시그너처를 보여준다고 본다. 각기 구체적인 레퍼런스와 뚜렷한 특징이 있지만 전체는 하나로 이어지니까. 하나를 딱 골라 이게 더 루카뇨 음딩게를 더 잘 보여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WWD 수공예 작업을 이야기할 때 남아프리카공화국 비영리 재단 필라니(Philani)를 자주 언급한다. 이 재단에 대해 알려달라.

부르키나파소에서 받은 인상을 담은 루카뇨 음딩게 2023년 봄/여름 컬렉션 ‘부르키나’. / Courtesy of LUKHANYO MDINGI
부르키나파소에서 받은 인상을 담은 루카뇨 음딩게 2023년 봄/여름 컬렉션 ‘부르키나’. / Courtesy of LUKHANYO MDINGI

 

LUKHANYO 필라니를 정확하게 발음한 건 당신이 처음이다! 2020년에 협업을 시작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함께할 계획이다. 2021년 가을/겨울 시즌 쿠츠(Coutts) 컬렉션을 위해 우븐 의상과 태피스트리 제작을 의뢰한 것이 시작이었다. 필라니의 어머니들은 수공예 기술이 있지만 대부분 생활고를 겪거나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필라니와 함께하면서 그들이 계속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고 창의적인 기술을 쌓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모습을 한, 나의 어머니일 수도 있는 사람들 곁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안에서 무언가 스파크를 일으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단순히 도와준다는 차원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자극과 영감을 주는 협업 관계다. 내게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그들과 함께 논의하면서 발전되는 부분이 훨씬 크다. 텍스타일이나 컬러에서도 그들의 기술과 제안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WWD 남성 패션 위크에 새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여성 컬렉션을 단독으로 진행할 계획이 있나?

LUKHANYO 지금도 여성복을 내놓고 있다. 남성 컬렉션과 함께 선보이고 있지만 말이다. 비즈니스에서 여성복의 비중이 훨씬 크다는 걸 알면 아마 놀랄 것이다. 매출의 70퍼센트가 여성복이니까. 하지만 아직까지는 남녀 컬렉션을 따로 발표할 계획이 없다.

루카뇨 음딩게 2023년 봄/여름 컬렉션 ‘부르키나’. / Courtesy of LUKHANYO MDINGI
루카뇨 음딩게 2023년 봄/여름 컬렉션 ‘부르키나’. / Courtesy of LUKHANYO MDINGI

 

WWD 마지막 질문이다. 이번 2022년 가을/겨울과 최근 발표한 2023 봄/여름 컬렉션에 대해 설명해달라.

LUKHANYO 2022년 가을/겨울 시즌이라…컬렉션 이름이 뭐더라. 유럽과 계절이 달라 시즌으로 나누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컬렉션에 이름을 붙인다. 아, 보디랜드 컬렉션이다. 2020년에 알게 된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티스트 아티파트라 루가가 보디랜드라는 이름의 특이한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노하우와 엔지니어 팀을 활용해 젊은 아티스트에게 멘토십을 제공했다. 그런 모습에 깊은 인상을받았고 그게 바로 내가 브랜드를 통해 하고싶은 일이었기에 컬렉션 이름으로 결정했다. 나는 장인의 수공예와 동시대 패션을 모던한 방식으로 결합하는 방식을 연구했다. 그 결과 정직하고 한결같은 매우 강렬한 의상을 만들어냈다. 2023년 봄/여름 시즌 컬렉션의 이름은 부르키나다. 부르키나파소의 직조 장인 공동체 ‘카베스 기에(Cabes Gie)’와 협업해왔기에 지난해 12월 부르키나파소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 지역 사람들과 그들의 일상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그들이 움직이고 차려입는 방식은 굉장히 감성적이고 창의적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식상한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정말 아름답고 사려 깊달까. 카베스 기에는 말 그대로 텍스타일에 진정성을 담아 직조한다. 그들의 독창적인 텍스타일이 내 디자인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에 그들의 작업에 존경심을 느낀다. 카베스 기에의 나라와 그 도시의 감성을 컬렉션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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