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넬로 쿠치넬리 BRUNELLO CUCINELLI: 네 가지 원소의 변주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우주의 근본을 이룬다고 말한 네 가지 원소, ‘흙·공기·불·물’이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2026년 봄 컬렉션을 통해 다시 재해석됐다.
“자연을 움직이고 우리의 존재를 지탱하는 힘”
컬렉션은 흙을 닮은 샌드와 에크루, 화이트 클레이, 브라운 톤으로 시작됐다. 라이트 서머 트위드와 큼직한 헤링본 패턴에 담긴 내추럴 팔레트는 쿠치넬리다운 차분함과 고급스러움을 보여줬다. 공기의 이미지는 오픈 니트와 펀칭 디테일, 메쉬 소재로 표현돼 가벼운 질감을 강조했다. 불의 에너지는 평소보다 과감한 컬러로 등장했는데, 라바와 루바브, 파이어브릭 레드가 스웨이드 셋업에 더해지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물은 자개 장식 미니드레스, 파도 같은 주름 처리, 블루와 그린 원단에 얹힌 섬세한 자수를 통해 반짝이는 수면과 깊은 심연을 떠올리게 했다 바닥까지 이어지는 롱스커트와 와이드 팬츠의 실루엣은 여유롭고 편안했으며, 이브닝웨어도 한층 강화됐다. 시퀸과 깃털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슬립드레스는 이번 시즌을 대표하는 룩으로 손꼽혔다.
자연의 원소에서 출발한 쿠치넬리의 2026년 봄 컬렉션은 절제된 우아함 위에 화려한 색채와 장식성을 더하며, 브루넬로 쿠치넬리만의 헤리티지를 한층 강화했다.
펜디 FENDI: 트리피한 럭셔리의 세계
펜디는 이번 시즌 ‘럭셔리도 트리피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듯, 다채롭고 위트 넘치는 2026 봄 컬렉션을 선보였다. 런웨이에는 사이키델릭 플로럴과 스포츠웨어 디테일, 그리고 밀라노에서 다시금 힘을 얻고 있는 ‘90년대 무드를 교차시키며 경쾌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시즌에 맞춘 듯한 드로스트링, 어드저스터블 스트랩, 윈드브레이커의 집업과 밑단 처리 등 아웃도어적 요소를 펜디의 우아한 세계에 끌어들였다. “일상을 격상시키고 싶었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트랙 재킷은 실크 파유 소재로 제작되어 펜슬 스커트와 매치되며 새로운 형태의 런천 슈트로 완성되었고, 아노락과 윈드브레이커는 펀칭과 레이저 컷 가죽으로 고급스럽게 변주되었다.
펜디가 오랫동안 다뤄온 ‘스텔스 럭셔리’는 이번 시즌 절정에 올랐다. 피카부 백 안쪽에 시퀸을 포함한 정교한 자수를 숨겨 넣어 ‘조용한 럭셔리’ 대신 ‘개인적인 사치’를 제안한 것. 여러 톤의 비비드 컬러, 프린트 레이스, 플로럴 컷아웃, 퍼리 메쉬 로퍼와 주얼리처럼 연출된 새로운 ‘콜리에(Collier)’ 백까지 풍성한 액세서리로 무대를 채웠다.
마크 뉴슨이 설계한 픽셀 언덕 무대는 그 자체로 시각적 카오스를 연출했으며, 관객들은 다채로운 큐브 위에 앉아 펜디 백과 참을 비교하며 쇼를 즐겼다.
디젤 DIESEL: 사냥터가 된 도시
다시 한 번 글렌 마틴스의 실험 정신을 증명한 디젤의 2026년 봄 시즌.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도시 전역에서 펼쳐진 ‘에그 헌트(Egg Hunt)’였다. 정원, 극장, 광장, 심지어 빙고장에까지 흩뿌려진 34개의 달걀형 디스플레이를 찾는 게임에 약 5천 명이 온라인으로 참여 신청했고, 참가자들은 세 시간 반 동안 밀라노를 누비며 디젤의 세계를 직접 경험했다.
“도심 곳곳은 디젤의 일부”라며 마턴스는 쇼핑가부터 클럽, 바, 섹스숍, 정비소까지 다양한 장소를 배경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장했다. 이는 돈, 배경, 성별이나 성적 지향과 무관하게 모두를 향하는 디젤의 민주적이고 파격적인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치였다. 단순히 보는 쇼가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이전의 공개형 패션쇼보다 한층 강력한 연결감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우승자에게는 디젤의 데님 룩이나 액세서리, 그리고 쇼 피스를 개인 맞춤으로 받아볼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졌다.
컬렉션 자체는 실험성과 진화를 동시에 보여줬다. 새롭게 개발한 ‘새틴 데님’으로 만든 드레스, 에이프런 톱, 펜슬 스커트와 아우터는 광택감과 함께 레이저로 마모 처리해 디젤다운 거친 매력을 더했다. 퍼플, 라임, 스카이 블루 같은 강렬한 색 조합, 길어진 밑단, 바이커 스트랩 디테일 등은 날렵하면서도 자유로운 에너지를 담았다. 저지와 타프타, 테크니컬 원단을 이중으로 겹쳐 깨진 듯한 질감을 연출한 아이템들도 등장했으며, 동물 패턴과 상상 속 생물을 모티프로 한 컷아웃 드레스와 점프슈트는 유쾌한 반항을 드러냈다.
마턴스는 우승자들에게 웃으며 “가장 똑똑한 선택은 가죽 룩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가장 비싸니까.” 그의 농담처럼, 이번 디젤은 도전적이면서도 상업적 매력을 동시에 품은 채 브랜드의 미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