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 비통 Louis Vuitton
이번 시즌 루이 비통은 레드 카펫 대신 집 안의 카펫과 러그, 욕실 매트에서 영감을 받은 런웨이를 선보이며 ‘집에서의 드레스업’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VIP 드레싱의 대가답게 이번에는 홈바디를 위한 컬렉션에 집중했고, “가장 먼저 자신을 위해 입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집에서 느낄 수 있는 평온함과 친밀감을 패션으로 풀어냈다.
제스키에르는 미래지향적이고 건축적인 실루엣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번에는 테디베어 같은 질감의 코트, 목욕가운을 닮은 실루엣, 보송한 니트 스웨터와 드롭 크로치 쇼츠, 토가풍 드레스와 풍성한 드레이핑 룩 등 한층 아늑한 무드에 도전했다. 그러나 실험 정신도 놓치지 않았다. 점프수트처럼 보이는 낙타색 코트, 고대 기법을 응용해 브러시드 실크로 완성한 밍크 같은 로브, 보석을 흩뿌린 의상 등이 대표적이다.
장식적인 의상은 더욱 눈부셨다. 광택 있는 꽃 자수가 더해진 삼각형 태버드, 피날레를 장식한 비즈 프린지 드레스가 그 예다. 반면 면 톱과 실크 와이드 팬츠, 브로케이드 삭스에 샌들을 매치한 단순한 스타일링도 함께 제시하며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이번 쇼는 무대 자체로도 럭셔리 경험의 확장을 보여주었다. 루이 비통은 수년간 루브르에서 쇼를 열어왔는데, 이번에는 복원된 안 도트리슈 왕비의 여름 아파트를 배경으로 삼았다. 제스키에르는 이 공간에서 ‘머무는 삶’을 떠올렸다고 밝혔는데, 이는 단순히 집에 머문다는 의미를 넘어 루이 비통의 VIC들에게는 요트에서의 여름과 메제브 샬레에서의 겨울을 뜻하기도 했다. 관람객들은 평소 문을 닫은 화요일에 루브르를 산책하며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독점적으로 감상했고, 프랑스 장식가 마리안 데르빌이 큐레이션한 18세기 캐비닛, 미셸 뒤페의 아르데코 체어, 피에르 아드리앵 달페라의 세라믹 오브제를 마주했다.
음악 또한 이번 쇼의 분위기를 완성했다. 탕기 데스타블이 작곡하고 케이트 블란쳇이 낭독한 토킹 헤즈의 1983년 러브송 〈This Must Be the Place〉 가사가 울려 퍼지며 집이 주는 안도감과 보편적인 귀속감을 전했다. “Home is where I want to be, but I guess I’m already there(내가 있고 싶은 곳은 집, 하지만 어쩌면 이미 그곳에 있는지도 몰라)”라는 가사는 쇼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자리했다.
루이 비통 2026 봄 컬렉션은 패션 그 이상의 의미로, 아늑함과 실험, 그리고 특별한 경험이 결합된 럭셔리의 새로운 정의를 제시했다.
| 드리스 반 노튼 Dries Van Noten
드리스 반 노튼 2026 봄 컬렉션은 서핑과 자연, 그리고 낙관적 에너지를 테마로 삼아 바닷가의 자유와 활기를 런웨이 위에 펼쳐냈다. 줄리안 클라우스너는 “바다, 파도, 자연과 일몰에 조화를 이루는 감각에서 출발했지만, 무대에 오른 건 그 이상의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모델들은 레몬·라임·탠저린·선명한 그린 등 이국적인 바다 생물을 연상케 하는 컬러를 입고 유영하듯 등장했다. 시퀸이 흘러내리듯 장식된 시스루 카프탄, 물결의 반짝임을 닮은 크리스털 장식 드레스가 눈길을 끌었고, 강렬한 대비의 컬러 조합은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투톤 테일러드 재킷은 가볍게 흩날리는 시폰 스커트와 매치됐고, 올리브색 버뮤다 쇼츠는 검은 비즈 자수로 장식되어 빅토리아풍의 고전적인 무드를 더했다.
스쿠버 슈트와 티셔츠를 절묘하게 결합한 듯한 조각적 울 톱은 몸을 감싸는 잠수복의 우아함을 연상시키며, 긴 시폰 스커트와 어우러져 쿠튀르적인 감각을 완성했다. 클라우스너는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옷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며, 풍성한 러플을 더한 져지 톱, 밀리터리풍 코트와 재킷들을 선보였다. 카나리아 옐로 울과 미드나잇 벨벳, 델프트 블루·크림·버건디의 조화는 강렬하면서도 세련된 존재감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무지갯빛 슬림 스니커즈가 등장해 컬렉션에 활기를 더했다. 경쾌한 색채와 자유로운 감각은 드리스 반 노튼 특유의 옷장에 또 하나의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이번 시즌을 긍정과 즐거움으로 물들였다.
| 랑방 Lanvin
랑방 2026 봄 컬렉션은 아르데코 탄생 100주년과 잔 랑방의 1920년대 전성기를 기념하며, 창립자의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은 우아하고 섬세한 무대로 완성되었다. 예술감독 피터 코핑은 두 번째 쇼에서 파리 장식미술관에 상설 전시된 잔 랑방의 개인 아파트 ‘블루 룸’에서 착안해 무대와 드레스 일부를 푸른빛으로 물들였고, 낮게 내려앉은 드레스, 기하학적 패턴, 헤드밴드 등 1920년대의 핵심 요소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컬렉션은 칵테일 드레스와 이브닝 드레스를 중심으로 절제된 화려함을 드러냈다. 자수를 재해석해 카보숑 위에 시폰을 덧씌우거나 일러스트레이터에게 프린트로 변주를 맡기는 등 아카이브를 우아하게 소환했으며, 고급스럽지만 과하지 않은 ‘문명화된 볼륨’을 구현했다. 관능적인 무드도 더해져, 옆이 트이고 리본으로 허리를 묶은 플래퍼 드레스, 퍼프 숄더 재킷과 등 부분이 아치형으로 파인 스웨터, 드라마틱한 소매와 풀 스커트 실루엣의 트렌치 드레스 등이 이어졌다. 블랙 고데 장식으로 층을 이룬 화이트 스커트는 아르데코와 재즈 에이지를 현대적이면서도 미니멀하게 담아냈다.
남성복은 라임 그린 데님과 테크니컬 아우터에서부터 웅장한 가죽 코트까지 폭넓게 전개되었지만, 아직 발전 과정에 있는 듯했다. 다만 조합이 잘 맞아떨어질 때는 무용수 누레예프의 오프 듀티 무드를 연상시키며 신선한 매력을 선사했다.
피터 코핑은 이번 시즌, 잔 랑방의 유산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더해 아르데코의 황금기를 오늘날의 럭셔리로 세련되게 재해석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