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37년 동안 에르메스 남성복을 이끌어온 베로니크 니샤니앙(Véronique Nichanian)이 떠나며 후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지난 21일 영국과 자메이카 혈통을 지닌 디자이너 그레이스 웨일즈 보너(Grace Wales Bonner)를 하우스의 새로운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표했다.
새 디렉터의 발표와 함께 파리 증시에서 에르메스 주가는 1.4% 상승한 2,250유로로 마감했다. 에르메스는 다음날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으며, 애널리스트들은 전 카테고리에서 9.7%의 유기적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특히 레디투웨어는 8%, 가죽 제품은 14.5%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니샤니앙은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라는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이를 에르메스의 언어로 완성해온 인물이다. 편안함과 절제된 우아함, 장인정신이 어우러진 그녀의 컬렉션은 럭셔리의 상징이었다.
웨일즈 보너는 보다 철학적이고 문화적인 감성을 지닌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역사와 정체성, 예술을 섬세하게 탐구하며 클래식한 테일러링에 수공예적 디테일과 문화적 상징을 결합해왔다.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웨일즈 보너(Wales Bonner)’를 통해 지난 10년간 차별화된 미학을 구축했고, 아디다스와의 협업 등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업계에서는 내부 인사가 유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던 만큼, 이번 외부 영입은 의외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패션 칼럼니스트 라이라 파란 그레이브스는 “만약 외부에서 디자이너를 데려온다면, 에르메스의 가치와 미학을 공유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라며 “웨일즈 보너의 절제된 라인과 사려 깊은 접근은 하우스와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평가했다.
니샤니앙은 2026년 1월 컬렉션을 끝으로 하우스를 떠나며, 웨일즈 보너는 그 다음해, 2027년 1월 첫 에르메스 컬렉션으로 그 바통을 이어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