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밀라노의 런웨이에서 라이브커머스까지, 중국 패션 브랜드들은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고 있다. 명성과 실적이 교차하며, 글로벌 영향력이 로컬 매출로 이어지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황금 연휴가 이어진 9월과 10월의 리테일 대목을 지나며, 중국 브랜드들은 글로벌과 로컬, 서사와 전환 사이의 균형을 다시 조율하고 있다.
규모의 신화 종말
지난 10여 년간 중국 패션 산업을 이끌어온 것은 ‘규모의 확장’이었다. 매장을 빠르게 늘리고, 제품의 색상·사이즈·소재를 세분화하며 라인업을 확대하는 것이 곧 성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지금은 확장의 속도보다 유지의 힘이 중요해졌다.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는 한정된 주의를 여러 자극에 나누어 쓰기 때문에, 브랜드는 ‘얼마나 많이 노출되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머물게 하느냐’에 집중하고 있다.
이제 브랜드는 단순한 제품 경쟁을 넘어, 미학·문화·이념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 무대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패션위크다. 하지만 런웨이의 조명이 꺼지면, 브랜드는 다시 라이브커머스와 소셜 커머스, 싱글즈데이(Singles’ Day)의 전선으로 돌아가야 한다. (싱글즈데이는 매년 11월 11일, 알리바바가 주도하는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 축제로, 블랙프라이데이를 능가하는 규모의 소비 이벤트다.) 이 시기 브랜드들은 할인 경쟁을 넘어, 팬덤과 스토리텔링, 디지털 역량을 총동원해 브랜드 파워를 증명한다. 이번 시즌, 중국의 떠오르는 브랜드들은 실제로 그 여정을 몸소 증명했다. 파리 무대에서 쇼를 마치자마자 상하이로 돌아와 런웨이의 서사를 곧바로 리테일 전략으로 전환했다.
글로벌 무대 위 동양적 서사
중국 브랜드들이 ‘규모’에서 ‘의미’로 전환하면서, 글로벌 패션위크는 감정적 공명과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주요 무대로 자리 잡았다. 이제 디자이너들은 해외의 인정을 좇기보다, 세계와 중국 양쪽을 향한 대화를 설계하고 있다. 아이시클(Icicle)은 파리에서 ‘Beyond the Window’를 주제로 한 2026 S/S Artisan Series를 선보였다. 유려한 실루엣과 천연 질감, 오행의 색채에서 영감을 받은 팔레트로 투명함과 자유의 균형을 탐구하며 브랜드의 인간 중심적·생태적 철학을 확장했다. 중국 최초로 2년 연속 파리패션위크 공식 전시에 오른 송몽(SongMont)은 ‘중원(中原)’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석각, 건축적 실루엣, 실크로드 문양 등으로 고대 장인정신과 현대 조형미의 대화를 이끌었다. 건축가 출신 팀이 이끄는 케이건(Keigan)은 브랜드의 개념 자체를 확장했다. 18세기 유럽의 살롱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Keigan Genius Salon’을 통해 패션·건축·예술의 교차점을 탐구했다. 파리 쇼 이후 상하이 난징시루의 유서 깊은 건물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며 ‘공동 미학 창조’라는 상징을 세웠다. 한편 치크조크(Chicjoc)는 WWD 차이나 셀렉트 프로그램을 통해 밀라노에서 ‘Heritage Next: Glowing Milano’를 선보였다. 글로벌 신진 디자이너와 중국 리테일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전시로, 문화 교류를 상업적 기회로 전환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문화적 정체성과 국제적 감도의 융합, 그리고 글로벌 인지도를 국내 성장 동력으로 전환하려는 의지다.
브랜드 컬처가 구매로 이어지는 순간
10월 15일 프리세일을 시작으로 올해 싱글즈데이가 막을 올리자, 브랜드들은 또 한 번의 시험대에 올랐다. 행사가 열리자마자 중국 로컬 브랜드들이 주요 카테고리를 장악하며 시장의 주목을 끌었다. 티몰(Tmall) 스포츠·아웃도어 부문에서는 안타그룹(Anta)의 두 브랜드가 나이키를 제치고 1·2위를 차지했고, 뷰티 부문에서도 찬도(Chando), 프로야(Proya), 마오거핑(Maogeping) 등 중국 로컬 브랜드들이 글로벌 브랜드를 압도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돌아온 브랜드들에게 싱글즈데이는 단순한 쇼핑 축제가 아니라, 문화적 서사를 실제 소비력으로 전환하는 시험대였다. 치크조크는 지난해 타오바오 의류 라이브쇼로 단 하루 6,420만 위안(약 90억 원)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덴마크 디자이너 프레야 달쇠(Freya Dalsjø)와 보네티에(Bonnetje)와 함께 ‘2.0 슈퍼 패션 런치’를 진행해 WWD 차이나 셀렉트의 세계관을 이어갔다.
가격이나 속도만으로는 차별화할 수 없는 시대, 미학이 곧 브랜드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새로운 공식은 ‘Aesthetics(미학) – Engagement(관여도) – Conversion(전환)’의 선순환이다. 문화적 스토리텔링은 인지도를 만들고, 참여는 지속성을 부여하며, 디지털 전략은 영향력을 실질 매출로 연결한다. 결국 패션위크와 싱글즈데이, 하이패션과 하이트래픽의 시너지가 차세대 중국 브랜드 전략의 핵심이 되고 있다. 2026년에는 글로벌 패션 캘린더와 중국 디지털 경제의 접점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진정한 글로벌화란 단지 해외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매혹된 동양적 미학을 실제 소비자 연결과 성장으로 전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