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케어링(Kering)은 기업 슬로건을 ‘상상력을 북돋우다 (Empowering Imagination)’ 에서 ‘창의성은 우리의 유산이다(Creativity Is Our Legacy)’로 변경했다. 이는 그룹의 성장 전략을 총괄하는 프란체스카 벨레티니 (Francesca Bellettini)의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문장이다. 투자은행가로 시작해 유수의 패션 하우스에서 사업 개발, 머천다이징 등을 두루 거친 프란체스카 벨레티니는 변화와 위기를 기회로 삼는 리더십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최근 1년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와 함께 주요 브랜드의 CEO 인선을 이끌었으며, 현재는 생 로랑과 맥퀸, 포멜라토, 키린 등 다수 브랜드의 전략을 조율하고 있다.
‘창의성’이라는 단어는 케어링의 새로운 슬로건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케어링은 럭셔리에 집중해 온 그룹으로서, 우리를 더욱 명확하고 독창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중심에 ‘창의성’과 ‘유산’이라는 두 단어가 있죠. 유산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산을 살아 있게 만드는 동력이 창의성입니다. 오늘의 창의성이 내일의 유산이 되는 것이죠.
케어링이 트렌드를 따르는 패션 하우스처럼 보인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실과 다릅니다. 우리는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들이지, 따라가는 쪽은 아닙니다. 케어링에는 오랜 유산을 지닌 브랜드들이 많습니다. 구찌, 지노리 1735, 발렌시아가 등 모두 창의성을 기반으로 유산을 지켜온 하우스들입니다. 전통과 창조는 양립할 수 있고, 실제로 그래야만 지속이 가능합니다.
디자이너와의 협업에 열정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과거 헬무트 랭과 일했던 경험이 큰 전환점이었어요. 작은 조직이었기에 헬무트와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창의성과 비즈니스가 만나는 지점을 명확히 체감했습니다. 창의성은 비즈니스 안에서 구체화될 때 지속력을 갖는다는 걸 배웠죠.
최근 케어링 산하 브랜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교체가 활발히 이뤄졌습니다.
브랜드마다 변화의 타이밍은 다릅니다. 구찌에는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고, 뎀나는 유산과 새로움 사이의 긴장감을 이해하는 인물이죠. 발렌시아가는 뎀나의 성과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로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를 선택했습니다. 보테가 베네타 역시 브랜드 방향성에 속도를 낼 시점이었고, 루이즈 트로터와의 시너지를 빠르게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잘 알려진 디자이너들을 영입한 점에서 전략적 인선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단순히 ‘이름 있는 디자이너’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점에 브랜드와 가장 잘 맞는 인물을 선택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핵심은 브랜드의 감성과 디자이너의 비전이 얼마나 정교하게 맞닿아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주어지나요?
‘자유’보다는 ‘신뢰’와 ‘존중’이 더 적절한 표현입니다. 브랜드의 정체성 안에서 움직이는한, 우리는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최대한 지원합니다. 중요한 건 CEO가 창의적인 제안에 ‘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아니요’는 쉽지만, ‘예’는 종종 마법을 만들죠.
구찌의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데요.
급성장 후엔 조직 정비가 필연적으로 필요합니다. 구찌는 리테일 중심 구조에 맞춰 운영을 재정비했고, 제품 품질도 강화했습니다. 지금은 뎀나와 그의 팀이 창의력을 펼칠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시점입니다.
불확실성이 큰 지금 같은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위기를 관리하시나요?
위기는 스스로를 점검할 좋은 기회입니다. 저는 언제 어떤 전략이 효과를 낼지를 명확히 설정해 둡니다. 공포에 빠지기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개선할 부분은 과감히 수정합니다. 그것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방식입니다.
새로운 브랜드 CEO들의 선임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이번 인선은 브랜드의 미래 전략과 실행 역량을 기준으로 이뤄졌습니다. 후보 대부분 직접 일을 해본 경험이 있고, 그들의 역량을 신뢰합니다. 후계자 양성과 인재 육성은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과제입니다. 지속 가능한 리더십은 결국 사람에게서 시작되니까요.
멘토십에 대한 철학도 궁금합니다.
경청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집단 지성의 힘을 믿고, 위계보다는 존중이 우선인 조직 문화를 선호합니다. 생 로랑에서 함께한 동료들이 다른 브랜드의 CEO가 되었을 때, 팀 전체가 성장했다는 점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모든 인재가 꼭 ‘정상’에 오를 필요는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큰 기쁨이죠.
본인의 리더십 스타일은 어떤가요?
저의 리더십은 브랜드 전체가 잘 기능하도록 조율하는 데 있습니다. CEO 들에게 멘토가 되기도 하고,그룹과 브랜드 사이의 연결고리로서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기도 하죠. 각 하우스가 고유한 존재감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제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각 브랜드별 전략은 어떻게 접근하나요?
브랜드도 사람처럼 고유한 정체성을 지닙니다. 시대가 변해도 지켜야 할 본질이 있죠. 물론 진화는 필수지만, 그 방향은 브랜드의 근본 가치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요즘은 제품뿐 아니라 경험이 중요해졌지만,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브랜드 본연의 정체성입니다.
오늘날 럭셔리 산업에서도 여전히 위험을 감수할 여지가 있다고 보시나요?
당연히 있습니다. 우리는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산업입니다. 그 욕망을 자극하고 새로운 감각을 제안하는 것이 럭셔리의 본질이죠. 변화와 상상의 여지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신임 CEO 루카 데 메오의 합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가요?
이 업계에서 중요한 것은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자세입니다.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은 이사회 의장으로서 여전히 그룹의 핵심 가치인 ‘가족 중심 경영’을 이어가고 있고, 루카 데 메오의 리더십은 케어링에 또 다른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WRITER MILES SOCHA
EDITOR DAYOUNG KIM